Panda Express

뉴욕 우리 동네에 Panda Express가 생겼다. 16년전 미국으로 다시 유학왔을때, 서울에서 시카고행 비행기를 타고, 환승하려고 시카고에 도착했더니 딱 항공사 파업이었다. 그러다보니 미국 국내 비행기가 죄다 안 떠서 하루 더 시카고에 머무르게 됐는데... 그때 항공사에서 좀 많이 후진 라마다 호텔 숙박권이랑 식권 (?) 같은 걸 줬다. 일단 호텔에서 실컷 자고, 그 다음날 식권을 손에 꼬옥 즈려잡고 어디서 먹을까 무척 고민하다가 결국 들렀던 게 시카고 공항의 싸구려 Panda Express였다. (왜? 글쎄.)

제가 이 글을 쓰기 직전에 실제 집앞에서 찍은 사진이예요.

그 짜고 단, 인공조미료 가득한 중식(이라고 해야하나)을 혼자서 먹으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했더란다. 왠지 처음부터 조금 꼬이기 시작했던, 그후의 유학생활에 대한 기대와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얼어 붙었기도 했고. 어렸을때의 영어만 믿고 스스로 영어를 잘한다는 개콧구멍 같은 착각에 빠져있다가, 당장 비행기표 새로 받으려고 공항의 고객 창구에서부터 혀가 완전 꼬여 절망도 하고. 당시에는 당연히 (?) 결혼하게 될 줄 알았던, 서울에 두고 온 여자친구 생각도 나고. 겨우 19살이었던 주제에 뭐 인생 어쩌고 저쩌고 랄쥐 떨면서 무척이나 심각했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문자나 이메일이나 있었으면 가족이나 친구들한테 하소연이라도 했을텐데 그때만해도 국제 문자는 커녕 이메일도 나름 고급 IT 기술이었다. 그저 낯선 공항에서 덩그러니, 자다 깨서 부은 얼굴로 Panda Express의 sesame chicken 하나 놓고 혼자 울컥하는거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언젠가부터 "You are what you eat"을 믿기 시작한 이후로 (내가 맥주처럼 행동하는 이유일지도... 쿨럭) 모든 종류의 패스트푸드를 멀리 하기 시작해서 Panda Express를 다시 찾은 적은 없지만, 우리 동네 새로 생긴 그 가게를 지날때마다 길거리에 잠시 우두커니... 서있게 된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했을 지금의 내 모습이 (그게 나의 좋은 면이든 나쁜 면이든) 신기하고 낯설기도 하고. 후회 투성이인 내 20대지만 - 조금은 앳되고, 조금은 덜 시니컬했던 그 당시의 내가, 그립기도 하다.


기억중에는, 최근에 있던 일이라도 아무 인상이 안 남는 일도 있지만, 저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기억도... 있나보다. 다음에 시카고 출장가면 꼭 그때 그 Panda Express에서 사진이라도 찍어보고 싶다. 한심했던 내 청춘의 흔적이, 아직 거기 조금 남아있을지도.


[주: 2015년 12월에, 뉴욕에 살 당시 쓴 글입니다. 2022년에 사이트를 새로 열며 옛생각이 나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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