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일기라는걸 꼬박꼬박 쓴지 한 4-5년 됐습니다. 2009년에 회사를 싹 그만두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지던 그때부터 썼던것같은데, 이제 노트 몇권이 쌓이고 보니 제 인생에서 - 몇 안되는 - 진정 잘한 일 중에 하나란 생각이 듭니다.

제가 2016년에 썼던 일기장입니다.

처음 쓰기 시작했을때는 무슨, 조선왕조실록처럼 하루에 있었던 일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에 부합하는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기억에서 별 남기고 싶지 않은 언짢았던 일을 사실대로 기록하는것도 나름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억지로 출근해서 일 대충 하다가 상사 애써 외면한후에 집에 와서 술 마시고 밥 먹었다" <-- 요거의 무한반복적인 하루들이라 그런지 몰라도, "뭐했다"보단 주로 잡생각들을 주저리 주저리 읊어댑니다. 신기한건, 남들보기엔 (그리고 제가 보기에도) 정말 별 볼일 없는 인생인데도, 이상하게 항상 거리가 있습니다. 술 얘기, 女자사람 얘기, 직장 얘기, 야한 얘기. 그리고 그냥 사는 얘기.


누구한테 보여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너무 적나라해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읽어보면 무척 재밌습니다. "아 내가 겨우 몇 달 전에 요런 병의 신 같은 생각을 했구나"하며 하루하루 조금은 달라지는 제가 신기하고. 요즘 시간이 심하게 빨리 흘러가서 "뭔데 벌써 8월중순이냐고!"하고 울부짖어도, 또 막상 그동안 기록들을 보면 사실은 많은 일이 있었던것을 깨닫게 되는것도 성은이 망극한 일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즐겁습니다. 밤에 술 한잔 놓고 말도 안되는 얘기 혼자 개발 새발 소발 끄적끄적대는 그 시간은 심지어 제가 하루중에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나이 들어간다는건, 자기가 좋아하는 순간들이나 시간을 스스로 알아서 만들어가는 요령이 생긴다는 것과 같을지도 모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주: 2015년 8월에 쓴 글입니다. 2022년에 이 사이트를 새로 열며 옛생각이 나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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